[특별 기고] 영화 '1987',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나의 이야기

애틀랜타 한인들의 기억 속 1987년
①장승순

애틀랜타 중앙일보는 영화 '1987'의 12일 애틀랜타 개봉을 앞두고 격동의 그 시절을 추억하는 한인들의 사연을 모집했다. 주로 대학생이나 청년으로서 민주화시대를 보냈던 이들이 사연을 보내왔다.
영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6월 항쟁을 다룬 상업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세상이 좋아졌음을 절감하는 이도 있었고,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악몽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어떤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저편으로 밀어낼 수가 없다. 이들이 기억하는 그 시대는 잔인했고, 역사의 물결은 거셌으며, 젊은이들의 고민은 치열했다. 이들은 이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영화속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뜨거운 사연을 각색없이 소개한다.


1987년 6월 종로학원에서 재수생활을 하던 가운데 맞은 6월 항쟁.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명동으로 나아가 감히 한마디를 내지 못하고 긴장하며 두리번 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재수를 거쳐 서울대 캠퍼스에서 공부하던 4년은 공부를 한 것인지 뭔지를 알 수 없는 그 무엇이었죠. 늘상 있던 학회와 가투, 교투. 학생회관에 늘 전시되어있던 광주민주항쟁의 처절했던 이미지들, 항상 스피커로 아크로를 울리던 총학의 집회. 이 모든 것이 4년동안의 캠퍼스에서의 삶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눈 앞에 펼쳐진 이 모든 상황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고민하기에 앞서 시대가 던져준 고민들의 치열함과 깊이가 너무나도 무겁고 막중하였던 4년이었습니다.

계속 이어지던 대학생들의 분신과 죽음을 통한 저항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암울하고도 비장한 시대 상황이었지요. 불의한 정권에 볼모가 된 국가와 주권자인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없어서 서로 대치한다는 역설적이고도 슬픈 분노의 상황.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대학생으로서 살아간 대한민국의 시대적 상황은 그 이후의 제 삶을 정향시킨 세례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수면 깊이 잠겨 있던 모든 감정과 감상들을 다시 현재로 소환해 옵니다.

1987과 같은 영화는 하나의 영화로 보기에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불러 일으킬 줄 알면서도, 외면하지 못하고 볼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통해 보게 될 스크린 너머의 이야기의 본체는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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