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큰 물결의 한 가운데서 맞은 역사의 한 순간

애틀랜타 한인들이 기억하는 1987년
② 그레이스 고

애틀랜타 중앙일보는 영화 '1987'의 12일 애틀랜타 개봉을 앞두고 격동의 그 시절을 추억하는 한인들의 사연을 모집했다. 주로 대학생이나 청년으로서 민주화시대를 보냈던 이들이 사연을 보내왔다.
영화를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6월 항쟁을 다룬 상업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로 세상이 좋아졌음을 절감하는 이도 있었고,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악몽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어떤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저편으로 밀어낼 수가 없다. 이들이 기억하는 그 시대는 잔인했고, 역사의 물결은 거셌으며, 젊은이들의 고민은 치열했다. 이들은 이제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영화속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뜨거운 사연을 각색없이 소개한다.


85학번인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는 ‘학도호국단’ 체제에서 ‘총학생회’로 바뀐 첫해라 캠퍼스에 더 이상 짭새(사복 경찰)가 들어오지는 않았다.

84 이상 선배들의 ‘짭새가 캠퍼스에 날아다니던 시절...’은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했지만, 나의 대학 생활도 매일같이 터지는 최루탄에 익숙해져야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고만고만한 데모가 학교 정문 앞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때, 당시만 해도 겁이 많아서 데모에 나설 엄두도 못 내던 나 같은 학생들도 하나둘 행렬에 참여하기 시작한 때가 87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던 시기.

6월 10일에는 신촌에서 출발한 데모행렬에 아현동쯤에서 우리 이대생들이 합류했고, 시청으로 가는 길목 어딘가,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큰 물결의 한 가운데서 역사의 한 순간을 맞이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와 함께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그때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벌써 30년도 더 지나 조각조각 파편으로 남아 있는 그 시절 기억들. 영화 ‘1987’은 무명으로 그 시절을 살아낸 나에게도 보잘것없는 것 같던 그 기억들을 큰 그림으로 돌려주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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