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호 역사칼럼] 나라는 죽어서 국기를 남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로 시작하는 유치환의 ‘깃발’이라는 시가 있다. 깃발은 대개 하나의 이념을 상징하고자 하는 수단이다. 전쟁에서도 고지를 탈환하면 가장 먼저 깃발을 꽂는다. 만일 이 깃발이 한 나라의 국기라면 그것은 그 나라 상징의 전부이다. 이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라도 국기를 지키려는 일도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에 남부연합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남부연합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북부에 패한 이후에는 물론 남부연합기가 공식적으로 쓰일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15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에서는 주 의사당에 게양했던 남부기를 영원히 끌어내리는 행사가가 있었다. 주 의회가 남부기를 게양하지 않을 것을 의결함에 따라 주 의사당 게양대에서 제거 그것을 제거하게 된 것이다. 원인은 바로 얼마 전에 그 주에서 있었던 총격 사건이었다. 이 총격 사건으로 9명의 흑인이 살해되었는데, 살인범이 남부연합기를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는 사실이 밝혀지며 여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주 의회는 남부연합기를 게양대에서 내리도록 의결했다. 사실. 이 총격 사건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남부에서 옛날의 남부연합기를 게양할 정도로 남부인들이 이 깃발에 애착을 갖고 있는 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남부의 백인들이 아직도 남북전쟁에서 패한 일을 가슴에 담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이 아직도 백인 우월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부연합은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만들었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남부연합기와는 다르며, 그것도 남부연합은 약 5년 동안 서너 번 국기를 변경했다. 다시 말해, 급히 구성된 남부연합은 미처 국가의 면모를 갖추지 못해 국기를 제대로 확정 짓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남부연합은 1863년 5월 1일 마침내 깃발을 공식적으로 확정했다. 이 깃발의 모양은 빨간색 바탕에 푸른 띠를 X자로 그려서 그 X자 속에 흰색의 별 13개를 그려 넣은 것이다. 남부군은 이 깃발을 쓰다가 다시 1865년 3월 4일 또 깃발을 바꾸었는데 이 새 깃발은 미처 보급되기도 전에 남부가 북부에 항복하는 바람에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결국, 1863년에 만들어진 깃발이 남부연합의 공식적인 깃발로 쓰인 셈이다.
남부가 패망하고 나서 남부의 많은 주 정부는 남부연합기의 모양을 본떠 주의 깃발을 만들었다. 그 후 여론에 밀려 다른 깃발로 바꾼 주가 대부분이지만, 아칸소와 앨라배마처럼 아직도 남부연합기를 본뜬 주기를 그대로 쓰고 있는 남부의 주도 있다.
남부 연합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깃발을 지금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개 반이민 정서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 단원들은 아직도 남부 연합기 혹은 이와 유사하게 만든 깃발을 사용하고 있다. 조지아 스톤 마운틴에서 열리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이들은 남부연합기를 흔들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백인 우월주의를 나타내기 위해 남부연합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다만 남북전쟁에서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핑계에 불과하다. 심지어 2000년 3월에는 앨라배마 몽고메리에서 2천 명이 넘는 시위자들이 남부연합기를 내세우며 남부의 독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남북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이런 갈등이 모두 해소되려면 앞으로 몇 세대가 더 흘러가야 할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최근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인기 있는 정책을 펼치는 정치인들이 많아져서 걱정이다. 다만, 인명을 살상하는 일과 같은 폭력적인 탈 없이 시간과 더불어 백인 우월주의도 퇴색하면서 미국 사회가 원만히 보편적 인류애를 향해나아가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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