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칼럼] 내게 가장 소중한 것

인간관계는 반드시 물질보다는 마음이 앞서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돈이 넘치는 부자나 성형 미인은 친구로 삼지 않겠다는 생활신조를 가질 정도였다. 돈 많은 게 무슨 죄도 아니고 성형으로 미모를 바꿨다고 마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돌아보면 물질의 풍요함을 거부한다거나 외모의 인공적인 변화를 적대시했던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내 외모나 빡빡한 내 형편을 남들과 비교당하기 싫은 생각에서 나름대로 세웠던 방책이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물질 만능이나 외모지상주의에서 느낄 수 있는 열등감이 두려워서 지레 만들었던 삶의 제동장치가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 모임이 끝난 후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 내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 가까이서 대해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까다로운 사람이신 것 같아요.”

그녀와는 세 번째 만남이었다. 뜬금없는 그 말이 흉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솔직한 표현이 마음에 와닿아서 얼른 말을 받았다.

“네, 내가 좀 그렇지요? 근데 그게 잘 고쳐지질 않네요.”

내가 대답하자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남자 후배가 이어서 나를 설명했다.

“아, 네, 이 선배는 원리원칙주의자랍니다.”

남의 눈에 내가 그리 보인다는 것에 조금 당황해하는 내 마음을 보았는지 그녀가 말했다

“그거 지금 무지 칭찬받는 거라는 거 아시죠?”

모두 웃음을 터트렸고, 서로 마음을 나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헤어질 때까지 좋은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이어졌었다.

“소중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라고 생텍쥐페리가 말했던 것처럼, 마음은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귀중한 것이다. 사실, 마음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반응하지 않고서는 최소의 감정이나 감각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을 열어 보이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 마음과 누군가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신나는 일 아니겠는가.

노약자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일은 언제나 보람을 느끼게 한다. 다행하게도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은 덕분에 내 마음의 행복지수는 늘 높은 편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다리 힘이 쭉 빠져서 땅에 철퍼덕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다. 원칙을 설명하고 규칙을 이해를 시키려 해도 전혀 소통되지 않는 통제 불능인 노인, 사람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없이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인생을 살았었다는 할머니를 대하고부터 생긴 증상이었다. 머릿속에선 천둥소리가 나는 것 같았지만 어쩌겠나. 할머니가 일부러 하는 일도 아니니 서로 통하지 않는 마음만 탓할 수밖에.

비행기를 타면 비상 상황 시 안전요령을 승무원이 직접 시범을 보인다. 그중에는 기내에 산소 공급이 필요할 때 천정에서 내려오는 산소마스크와 좌석 밑에 배치된 구명조끼의 사용법이 있다. 잘 들어 보면 어린이나 노약자를 동반한 승객은 본인이 먼저 착용한 후에 그들을 도와주라는 설명이 나온다. 사는 동안 남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라는 말을 편하게 앉아 들을 수 있는 곳이 비행기 좌석 말고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니 요즘 들어 내가 부쩍 체력의 한계를 느꼈던 것은 갑상샘에 이상이 생긴 탓보다는, 긴장의 급물살에 휩쓸려 갈 길을 잃고 휘청거리는 내 마음을 미처 살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책임을 다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남이 바라보는 모습이나 기대에 맞추기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살피고 챙기며 살아야 했던 것을 그만 잊었었다.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내 마음이 탱탱해질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불어 넣는 것, 이것이 바로 노약자를 돕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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