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그레이 칼럼]봄의 향연을 즐긴 멋진 날


워싱턴DC는 요즈음 봄의 향연이 한창이다. 벚꽃놀이 온 사람들로 붐비는 다운타운 거리마다 싱싱한 봄기운이 넘친다. 특히 벚꽃 축제의 하나인 연날리기가 열린 이번 토요일에는 워싱턴 기념탑 주위의 탁 트인 넓은 들판이 그야말로 발 디딜 곳이 제대로 없도록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자동차 세울 곳을 찾지못하고 교통체증에 지친 사위는 우리를 기념탑 가까이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꽃놀이 하기에 완벽한 날씨라 내셔널 몰에 모여든 남녀노소가 만든 거대한 사람의 파도에 휩쓸렸다. 해마다 벚꽃놀이를 나왔지만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로 걸어 다니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이들을 위한 텐트에서 비누 방울을 만들며 좋아하던 손자가 연을 잡은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고층건물 같은 사람들의 장벽에 둘러싸여 걷기가 힘든 아이는 하늘에 너풀거리는 다양한 모양의 울긋불긋한 연들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작년 연날리기에는 들판을 기어다녔던 아이가 이제는 말도 많이 하고 제맘대로 뛰어다닌다. 사람에 부딪혀 넘어질까 걱정해서 아이를 뒤따르던 딸의 뒷모습을 잊을까봐서 우리 부부도 바쁘게 지그재그 움직였다. 사람들과 개들이 끊임없이 출렁거린 들판 한 곳에서 요가하는 남녀들이 보여준 묘기도 재미있었다. 아이가 지칠때쯤 우리는 천천히 제퍼슨 기념관 방향으로 본격적인 꽃놀이에 나섰다. 벚꽃이 거의 절정에 달했다. 넓은 호숫가를 둘러싼 화려하고 탐스런 하얀 꽃송이들이 바람에 가볍게 몸을 떨며 사람들을 매혹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의 감탄사를 공중에 흩으며 꽃속의 꽃이 되어 사진 찍기에 정신없이 바쁜 정경에 우리도 끼였다.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했다. 전날 케네디 센터에서 슬픈 오페라를 보고 받은 안타까움이 벚꽃에 둘러싸여 행복한 사람들의 흥겨움으로 말끔히 바뀌었다. 기념사진을 찍느라 복잡하게 앞길을 막는 사람들에 지친 남편의 피곤한 표정에 웃다가 자꾸 물가로 다가가던 아이를 덥석 안아 옆길로 나선 딸을 따랐다. 간이무대 앞에서 리치먼드에서 온 흑인밴드의 음악에 따라 춤추며 행복한 아이의 사진을 찍으며 벚꽃보다 더 화사한 아이의 행복에 벅찬 감정이 내 가슴을 채웠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의 순간인가.

사람들 사이를 다니며 천방지축인 아이를 어른 셋이 따르며 아이가 사람에 부딪힐까 나무뿌리에 넘어질까 조심스레 보호했다. 마른 잎이나 나뭇가지를 주워서 보던 아이가 작은 돌을 주워서 이리저리 훑어보고 손에 꼭 쥐었다. 아이에게 갖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예스” 해서 내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22개월,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아이는 제 엄마를 닮았다. 아이의 엄마도 그 나이였을 적에 다니며 작은 돌, 유리조각, 심지어 예쁜 껌 포장지까지 주워서 간직하곤 했었다.

워싱턴DC의 벚꽃놀이에서 딸과 나는 예전에 한국에서 즐겼던 벚꽃놀이를 회상했다. 오래전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에 근무할 적에 친분을 맺은 한국 해군 소장의 초대로 진해 군항제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당시 어린 내 딸들을 귀여워하며 사랑해준 그의 대학생 딸이 진해 곳곳의 환한 벚꽃 거리를 보여줬다. 어린 딸들은 “와” 와 “우”를 연발하며 활짝 핀 봄꽃들이 되었었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던 날, 공항으로 배웅하러 나와줬던 그 아름다운 가족과 오랫동안 인연이 계속됐다. 큰딸이 대학을 다닐 적에 한국을 잘 알고 싶다며 여름방학에 한국을 찾아갔다. 그때 해군에서 예편하고 한국의 국회의원이시던 그분 덕분에 딸은 국회의사당에서 한달 인턴을 하며 한국 공부를 많이 하고 돌아왔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딸은 50퍼센트 한국인이란 정체성의 혼란에서 안정을 찾았다. 이제는 국제정세의 전문가로 일하며 미국과 한국을 껴안고 워싱턴DC에서 똑소리 나게 활약하는 한인들과 끈끈한 친분을 갖고 한국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진해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꽃보다 사람이다. 그들의 건재와 행복을 빌며 언젠가는 다시 재회하기를 바랬다.

꽃구경과 사람구경 실컷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미국 초창기에 국회의사당 건물을 건설하는데 종사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세운 성당에 들렀다. 모국을 그리워했던 그들의 기도가 배여있는 성전에서 감사기도를 하는 나의 손을 아이가 꼭 잡아줬다. 어스름해질 때에 집에 도착하니 음식을 잘하는 사위가 멋진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렸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오늘의 핫이슈

핫딜 더보기

이 글을 공유하려면 링크를 복사하여 붙여넣으세요.
복사를 누르시면 자동 복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