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와 연애·마약한 로비스트···'바이든 잡는' 헌터, 차남 헌터?



조 바이든(왼쪽) 전 부통령과 아들 헌터 바이든이 2010년 함께 농구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스캔들에서 헌터 바이든은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내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유력후보로 꼽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1972년 천국과 지옥을 모두 맛봤다. 그 해 벌어진 일의 트라우마는 47년 후인 지금, 백악관을 향한 그의 도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해 시작은 화려했다. 미국 동부 델라웨어 출신의 변호사 바이든은 군 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9세 정치 신인의 당돌한 도전이었다. 그가 속한 민주당도 당선 가능성을 낮게 봤다. 공화당 소속 현직 의원이 강력한 후보였던데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월 선거 결과는 바이든의 승리였다. 미국 현대사에서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기록되는 영예도 안았다.

한 달 뒤 비극이 그를 덮쳤다. 12월18일, 크리스마스를 1주일 앞두고 그의 부인 네일리아가 두 아들과 딸을 데리고 크리스마스 쇼핑을 나갔다가 차 사고를 당했다. 부인과 갓 돌이 지난 딸 나오미는 즉사했고 두 아들 보와 헌터는 중상을 입었다. 충격을 받은 바이든은 상원의원직 포기까지 고심했다. 두 아들을 돌보는 데 전념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경선 선거 유세 중이던 지난 3월 먼저 사망한 가족에 대해 얘기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주변의 만류로 상원의원직을 수행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취임 선서 장소도 워싱턴이 아닌 아들의 병상으로 고집했다.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서를 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아들들이 우선이었다. 서울-대전의 거리에 맞먹는 워싱턴-델라웨어를 거의 매일 통근했다. 재혼하기 전 5년간 혼자 아들들을 돌봤다.

지금까지도 그의 보좌진들은 사고가 났던 날짜인 12월18일엔 일정을 잡지 않는다. 바이든이 부인과 딸을 추모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패밀리 맨 바이든’의 탄생이다.

"바이든, 대선 도전 앞두고 최악의 순간 맞다"

그런 그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스캔들은 양날의 검이다. 정적(政敵)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기회이면서도 그가 최우선시하는 가족, 그 중에서도 하나 남은 아들 헌터(46)가 연루돼있어서다. 헌터가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절 우크라이나 최대 에너지 회사인 부리스마의 사외이사로 일하며 혜택을 봤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지난 7월 통화하면서 관련 의혹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내부고발자의 투서가 이번 탄핵 스캔들의 결정적 방아쇠를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되는 공세에도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까지 침묵을 지켰다. 헌터 바이든의 의혹에 대한 의구심이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오면서 지지율도 떨어졌다. 부동의 1위였던 그의 아성이 흔들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이든의 당선에 선거 전략가로 기여했던 데이비드 플루프는 “지금 순간을 십분 활용해 (민주당 대선)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며 “바이든이 왜 잠잠한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코멘트했다.
NYT는 해당 기사에서 “대선 도전을 앞둔 바이든, 최악의 순간을 맞았다”고 평했다. 바이든은 9일(현지시간)이 되서야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바이든은 왜 소극적으로 대응했을까. 헌터에 대한 바이든의 애정에 답이 있다. 맏아들 보 바이든은 2015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자식을 앞세운 참척(慘慽)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바이든에게 헌터는 하나 남은 아들이다. 애정이 두터울 수밖에 없다.




 2015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맏아들 보 바이든의 장례식. 바이든의 왼쪽에 선 여성이 보 바이든의 부인 홀리 바이든이다. [AP=연합뉴스]






헌터는 지난 몇 년 간 바이든에겐 애물단지에 가까웠다. 2014년엔 마약인 코카인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미 해군 예비역에서 퇴출당했다. 맏아들 보 바이든은 모범생 성향으로 아버지의 길을 따라 정치인이 되고자 했지만 차남은 달랐다. 변호사이자 로비스트의 길을 걸었다. NYT와 WP에 따르면 이 자체가 논란을 부르는 선택이었다.
아버지가 부통령인데 아들이 로비스트라면 미국 사회가 유난히 민감한 ‘이해 충돌(conflict of interest)’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어서다. WP가 이번 탄핵 정국 이전인 지난 5월부터 ‘헌터 바이든의 엉망인 사생활이 그의 아버지에게 걸림돌이 될 것인가’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NYT는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도 헌터 바이든의 비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헌터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중국과의 유착 의혹도 받고 있다. 2014년 바이든 부통령이 중국과 무역협상에 관여했을 때, 중국에서 투자회사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마련했다는 의혹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에 조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안이다. 타국에 정적의 아들을 조사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도 비판받았지만, 헌터 바이든에 대한 의혹도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다. NYT는 익명의 민주당 관계자를 인용해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식으로 바이든의 이름이 나오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판 '막장 로맨스' 논란 불렀던 헌터

WP가 헌터 바이든의 사생활을 두고 “엉망(messy)”이라고 표현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가 2015년 사망한 형의 부인인 홀리 바이든과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형의 사망 직후 형수와 사귄 데 대해 미국 매체들로부터 ‘막장 로맨스’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헌터는 부인과 별거 중으로, 법적 유부남이었다. 헌터와 형수와의 관계는 약 2년 만에 끝났다. 헌터는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영화계 인사인 멜리사 코헨과 결혼했다.




 2013년 한 행사장에 모인 바이든 전 부통령(맨 오른쪽)과 그의 맏아들 보 바이든(맨 왼쪽), 차남 헌터. 보 바이든은 2년 뒤 뇌종양으로 숨졌고, 헌터 바이든은 형수 홀리 바이든과 연애를 시작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맏아들의 부인과 차남의 연애가 논란이 됐을 때도 헌터를 감쌌다. 당시 그는 “헌터와 홀리가 (각각 형과 남편의 죽음이라는) 아픔을 함께 이겨내는 것을 응원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적극 대응 모드로 전환하면서도 자신의 아들과 가족을 지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WP에 6일 게재한 기명 칼럼의 제목도 ‘트럼프는 나도, 내 가족도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로 달았다. 최근 치열한 경선 일정 중에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은 하루 일정을 다 비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손녀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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