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수 칼럼] 해리의 독립 선언

바람 잘 날 없다는 영국 왕실이 또 들썩인다. 다음 왕위를 계승할 찰스(Charles) 왕세자와 유명을 달리한 다이애나(Diana)의 차남 프린스 해리(Prince Harry)가 그 중심에 있다. 영국 왕실의 전통에 반해 미국인 이혼녀 메건 마클(Meghan Markle)과 혼인을 해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둘 사이에 아들 아치(Archie)를 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메건은 영국 왕실 며느리의 전형은 아니다. 부적격 사유가 너무 많았다. 외국인에다 배우 출신의 평민이고, 이혼 전력이 있고, 백인 부친과 흑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그녀가 해리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현대사회와 영국 군주제에 불어 닥친 변화를 상징한다고 보아서 좋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치는 영국 왕위 승계 번호 일곱 번째로, 혼혈아가 영국 왕위 승계 순위에 이처럼 상위에 오른 일은 영국 왕실 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해리는 새해 벽두에 왕실 고위직 일원으로의 역할에서 물러나 재정적으로 독립하고, 영국과 북미를 오가며 살겠다는 발표를 해 영국 왕실을 당황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프린스 해리의 왕실 법도를 벗어나는 비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마초를 피워 마약 중독 치료를 받았는가 하면, ‘나치 제복’을 입고 파티에 나타나 구설에 오른 적도 있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여자들과 옷 벗기 당구를 쳐서 뉴스에 오르고, 여러 여자와의 염문도 있었다. 사춘기(12세)에 어머니 다이애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삐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고 한때는 반항기 왕족(royal rebel)이라는 달갑지 않은 칭호도 붙어 다녔다. 그러나 영국 육군에 입대해 아프가니스탄 전지 복무를 포함해 10년간 근무하며 성숙하고 철이 들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이애나가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그녀 생존 중에 여러 가지 자선 사업과 봉사 활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여 여러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사회적 반항아(social rebel)’로 알려진 것을 생각하면 해리의 반항기가 우연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해리의 행보를 보면 환경보호와 위기에 처한 동물 구조 등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서 예전의 사고뭉치가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모친 다이애나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며 지하에 있는 그녀를 흐뭇하고 자랑스럽게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군주제가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는 오래된 일이다. 민주주의와 자치정부가 대세인 현대사회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영국에서도 비록 실권 없는 군주라 해도 왕실 존폐론이 끊임없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특히 이번 해리의 독립선언 같은 에피소드나 왕족을 둘러싼 가십성 뉴스가 있을 때마다 논쟁은 재점화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버리고 싶은 유물’로 여기는 군주제도이지만, 19세기 영국 헌정의 대가 월터 배젓(Walter Bagehot )이 지적한 영국 정치제도의 ‘위엄 부문(dignified parts)’을 대표해 영국 체제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태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해리 부부의 독립 선언이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미지수다. ‘재정적인 독립’을 어떻게 해나갈지도 궁금하다. 시니어(senior) 왕족으로서 해리 왕자와 메건 왕자비는 어떤 형태의 돈벌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는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해리 부부의 독립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1월 13일 엘리자베스 여왕, 해리 그리고 다른 시니어 왕족들의 긴급 대책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를 마친 후 여왕은 해리 부부의 소망을 전폭 지지하며, 두 부부가 캐나다와 영국을 오가는 전환기를 갖기로 합의했고, 독립에 대한 구체적 최종결정은 추후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사태 진전은 ‘걸기대(乞期待)!’로 해 둔다.

태종수 전 아칸소대학 정치학 교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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