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 편지] ‘정중동’의 시간을 걸으며…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고립과 단절이 일상이 된 이 생경한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을까?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그간 우리 삶을 지배해 온 모든 질서를 교란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연했던 일상에 균열이 가니 스스로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완고하고 견고하게 쌓아 올린 우리 저변의 어떤 교만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이 또한 언젠가는 모두 지나가고 지금의 이 시간을 돌아볼 날이 오겠지만, 이 시간을 내 삶에 어떤 이정표로 남길 것인가 겸허히 고민하게 된다.

무심히 잊고 지냈던 깨달음의 말들을 새삼 떠올려 본다. ‘약자에게 눈길을 주고 소소한 작은 것들에 감사와 감동을 느껴보라’고. ‘분주한 속도전에서 잠시 비켜서서 느리고 깊게 심호흡하며 내 삶에서 지켜야 할 것과 덜어낼 것을 깊게 성찰해 보라’고.

생명이 위협받고 생계가 위태로운 불안정한 이 시기에 마음을 돌보고 주변을 살피는 일에 부릴 여유가 없을 듯도 싶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고 풍족해서 느낄 수 없었던 작고 고요했던 그 무엇들을 바라보게 되고, 뒤따라오는 잔잔한 여운으로부터 이 어려운 시간을 살아낼 힘을 얻기도 한다. 여린 새싹과 봄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경이로운 자연에서 위안을 얻고, 비록 온라인일지라도 안부를 묻고 서로를 기억하는 누군가와 함께하며 위로를 받는다.

또, 이 어려운 시기에 음악은 사치일 듯도 싶지만,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타고 전해지는 다양하고 값진 연주들은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이완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음악적 행위들이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든다. 그래서 음악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정치적, 사회적 힘의 논리 앞에서 많은 순간 약자이지만, 때때로 가치롭고 의미 있는 힘을 갖기도 한다.

한국음악은 오랫동안 그 어떤 음악보다도 약자였다. 한국이라는 동양의 조용하고 작은 나라가 서구화와 근대화의 부침 속에서 수많은 약자의 헌신과 희생을 딛고 다이내믹 코리아로 성장해온 그 역사에서 전통음악은 가난하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K-Pop을 필두로 한 한류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서서 코로나 19를 견제하는 대한민국은 미국인들에게 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새롭게 각인되고 있다. 모두 한국인들이 이뤄내고 있는 일들이다.

그 한국인들의 오랜 문화적 심성이 담긴 한국음악의 미적 지향은 ‘정중동’으로 표현되곤 한다.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 자칫 단조롭게 들리는 단선율의 음악은 ‘정’적이지만, 음과 음을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여음의 유동성은 인위적인 가공을 최대한 배제하며 음악 전체에서 의미 있는 함의를 가진 ‘동’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선율을 각 악기의 개성에 맞게 변주하는 가운데 조화와 균형을 찾는 헤테로포니는 한국음악 연주의 중요한 한 방식이기도 하다. 여러 악기의 합주에서 지휘자가 없어도 서로의 호흡과 흐름을 존중하며 하모니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음악적 아름다움을 찾기도 한다.

한국의 국립국악원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코로나 19 극복 온라인 콘서트 ‘일일국악’>을 열고 있다. “부조화 속의 조화, 혼돈 속의 질서”를 보여주는 즉흥음악의 진수, ‘남도시나위’와 “수명이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정중동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천년만세’를 비롯한 여러 한국음악과 춤을 만날 수 있다.

잔인한 4월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상생과 연대, 존중과 배려, 성찰과 희망의 가치를 기억하며 ‘정중동’의 지혜를 실천해야 할 시간을 우리 모두 ‘함께’ 걷고 있다.


심준희 / 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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