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아래서] 손바닥만 한 하늘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여러 가지로 놀라지만, 그중에서도 지하철은 여전히 적응이 쉽지 않은 곳이다. 거미줄을 겹쳐 놓은 것 같은 노선도를 보노라면 편리한 지하철이라는 말이 목젖에 걸려 허우적댄다. 갈아타는 곳이란 표지를 놓칠까 전전긍긍했던 순간들이 잘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에도 지하도가 있었다. 이제는 지하상가로 가득 차 있지만 한때 서울에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남대문을 견학하고 제일 먼저 들어가 보았던 코스가 바로 남대문 지하도였다. 당시에도 하루 4만 명 이상이 오가던 길이었으니 상당히 번잡한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건너편에 늘어서 있던 상가를 가려면 이 지하도를 거쳐야 했는데, 출구를 찾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나와보면 저쪽이고 들어가 보면 다시 그곳이었다. 분명히 상가 쪽으로 갔는데 나와보면 남산이 보이고, 다시 들어갔다 나오면 엉뚱한 건물이 나왔다. 길을 찾게 해주는 안내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길을 찾게 해 준 것은 안내판이 아니라 입구에서 구걸하던 노숙자 아저씨였다. 적어도 그분은 항상 그 자리에 자리를 펴셨으니까.

지하도는 안전하고 빠르게 건너편으로 가게 해주는 길이다. 그런데 들어가면 길을 잃었다. 거기는 손바닥만 한 하늘도 없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 알았다. 지하도가 어두워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환하게 보이지만 길을 잃는다. 표지판이 친절해지고 번호까지 달려있어도 여전히 쉬운 길이 아니다.

요즘은 꼭 이런 지하도를 걷는 것 같다. 어둡지 않다. 보고 싶으면 화상 전화가 있고, 시간을 보낼 인터넷이 있다. 어찌 보면 깨끗하고 깔끔하다. 가족 외에는 서로 섞여 다툴 일도 적고 스트레스도 적게 받을 것 같다. 표지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소식과 뉴스가 가득하다. 그런데 이 길은 즐겁지 않다. 익숙해지는 데 익숙하지 않다. 길을 아는데 길을 잃는다.

만일 지하도 천장과 벽이 아니라 하늘과 산 그리고 집들을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늘이 있는 길은 단지 환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디를 걷는지를 알게 해준다. 아무리 깔끔하고 빠르고 좋은 길이어도 길을 잃으면 불안할 뿐이다. 우리는 알쏭달쏭한 표지판을 보고 걷지 않는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좁아터진 길에 손바닥만 한 하늘이 보이는 것 같지만, 하늘이 작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광대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서 걷는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ㆍ나성남포교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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