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공공성] 칭찬과 꾸중이 득이 되려면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은 언제나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일까. 과연 꾸중은 해로운 것일까. 간혹 뉴스에 등장하는 재벌가 자손들의 철없는 언행들은 꾸중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자유롭게만 자란 아이들은 밝고 창의적이긴 한데 남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이 부족하고 엄격하게 자란 아이들은 철은 들었지만 자유롭고 활발한 기운이 부족하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마감효과'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두뇌 회전을 활발하게 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는 칭찬과 꾸중을 하시되 다섯 가지 원칙이 있으셨다. 첫째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따로 칭찬과 꾸중을 하지 않으셨다. 둘째 대체로 잘하는 가운데 혹 잘못하는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흠이라도 없게 하기 위하여 꾸중을 주로 하셨다. 셋째 잘하는 것도 많지만 잘못하는 것도 많은 사람에게는 칭찬과 꾸중을 겸용하셨다. 넷째 대체로 잘못 하는 것이 많은 가운데 혹 잘하는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잘하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찾아서 그 마음을 살려 내기 위하여 칭찬을 주로 하셨다. 다섯째 모든 것을 다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벌을 놓고 일단 지켜보셨다.

대종사께서 성실하고 선한 제자에게는 조그마한 허물에도 꾸중을 더 하시고 성실하지 못하고 착하지 못한 제자에게는 큰 허물에도 꾸중을 적게 하시며 조그마한 선행에도 칭찬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대종사께서는 "열 가지 잘하는 가운데 한 가지 잘못하는 사람은 그 한 가지까지도 고치게 하여 결함 없는 인품을 만들기 위함이요 열 가지 잘못하는 가운데 한 가지라도 잘하는 사람은 그 하나일지라도 착한 싹을 키워 주기 위함이니라."

원불교 대학교 시절 과제를 소홀히 한 채 수업에 임한 적이 있다. 바쁘기도 했지만 고백하자면 담당 교무님이 순해 보인 것이 주된 이유였다. 언성을 높이지는 않으셨지만 정색을 하고 나무라셨다. 정신이 바짝 났다. 명색에 출가를 서원한 사람이 교육 과정에서부터 요령을 피웠다 생각하니 한 없이 부끄러웠고 남은 학창 시절 마음을 챙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에 기숙사 사감님의 칭찬과 신뢰는 낯선 출가생활에 용기와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가정에도 엄부와 자모가 필요하듯이 칭찬(상ㆍ자유)과 꾸중(벌ㆍ훈육)은 상황에 맞게 활용하면 모두 효과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칭찬과 꾸중을 주고받는 사람간의 마음가짐이다. 평소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지도인이 피지도인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과 애정에 바탕을 두고 했다면 칭찬이든 꾸중이든 효과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칭찬이든 꾸중이든 득이 될 리 만무하다. 앞의 예에서도 나무라신 교무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없었다면 당시의 꾸중이 곱게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 속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칭찬과 꾸중을 하거나 받는 위치에 있게 마련이다. 상대의 수준과 성향에 따른 적절한 칭찬과 꾸중은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서로간의 존경과 사랑 즉 신뢰이다.

양은철 / 교무ㆍ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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