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종교가 사라진다구요?

'탈종교화' '종교의 시대가 가고 영성의 시대가 온다.' 종교인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말들이다. 학자들은 서유럽의 예를 들면서 수십 년 내에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극단적 예측을 하기도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종교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믿음 강요' '제도화된 종교'가 먼저 떠오른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을 믿을 신(信)자를 써서 '신자' '신도'라고 하고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에서도 행(수행) 앞에 신(믿음)을 두어 '신행'이라고 할 만큼 믿음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핵심 개념이다. 믿음은 '모르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에게 불편한 개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태도는 불편함을 넘어 때로는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종교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루다보니 어쩔 수 없다 치고 그럼 이성과 합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자연과학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의 희망처럼(?) 자연과학은 믿음에서 자유롭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과학은 관측을 기본으로 이론을 정립해 가는 학문이다. 코를 의식하게 되면 아래쪽으로 희미하게 코가 보인다. 안경을 의식하게 되면 안경테가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평소에 코와 안경테가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처럼 관측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관찰하는 순간 이미 판단이 개입 된다는 의미에서 과학에서는 이를 '관측의 이론 적재성'이라고 부른다.

이성의 한계에 대해서는 데카르트와 칸트같은 유명 철학자들도 이미 언급을 했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언은 이성에 대한 절망에서 나온 것이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말 그대로 이성의 한계를 비판한 책이다. 결국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적 결론이라는 것이 결국은 선입견이나 신념 같은 지극히 비과학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종교는 물론이고 자연과학에서조차 믿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은 제도화된 종교이다. 신도 확보와 건물 확장 헌금 장려 등은 종교의 본래 목적인 신앙과 수행 전법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수단이다. 언제부터인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성자의 법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지 종단의 교세를 키우는 것이 목적인지 종교인 스스로도 헷갈려 하는 것 같다. 물론 종단의 교세가 커지면 종교의 본래 목적을 달하는 데 유리하겠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종교는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종교를 찾는 목적은 '존재론적 불안'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 때문에 생사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고 현재의 고통 때문에 인간이 뭘까 우주가 뭘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게도 된다. 종교에서 믿음의 의미에 대해 시대의 언어인 '과학'으로 설명을 해내고 종단을 위한 종교가 아닌 성자의 본래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하는 종교의 본래 목적에 충실 한다면 '근본 되는 가르침(宗敎)으로서 종교의 가치는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가치관의 혼란이 가중되는 현대 인류에게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원불교 미국서부훈련원 교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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