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그레이 칼럼] 깨어나자

작년 봄부터 조금씩 경직된 사회에 함께 동화되어 가다가 요즈음 가끔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든다.세계가 좁아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넓어진 것 같다. 마음이 편하면 세상도 편하게 볼 수 있다고 믿었던 과거는 현재로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 의지하고 살던 사람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나 혼자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 안주하며 밖의 세상과 나 몰라라 보내는 일상이 나를 어리숙하게 만든 것 같다.

간혹 지평선 멀리로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서 멍청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이런저런 취미생활 하며 1970년대 중반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R&B/Soul 노래 ‘모두 깨어나세요 (Wake Up Everybody)’ 를 듣는다. 근 반세기 전의 노래지만 그 가사는 2020년을 버티고 2021년을 사는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 인종, 신념과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아/ 우리에게 서로가 필요해…”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결국 개인의식의 깨어남에서 시작한다는 진리다.

나를 변화시키려니 내 속에는 크고 작은 많은 줄자가 있다. 이 줄자들은 내 삶의 근본으로 버드나무 가지처럼 바람에 부드럽게 휘어지며 단단하게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분열되어 갈등하는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질 못한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내가 고집스럽게 지키고 싶은 가치관조차 투명하지 않으니 당황스럽다. 그런데 아무리 환경이나 상황이 변해도 불변의 진리라고 믿은 삶의 나침반에 회의가 생기는 것은 무슨 일인가. 더구나 빠르게 바뀌는 세태에 어울리지 않으려는 이 미련한 고집은 또 무엇인가. 복잡한 해석보다 단순한 진실을 찾으니 매사에 냉철한 분석보다 다름을 배려해주는 줄자가 필요해졌다.

살면서 익숙해진 사회가 변하는 것에 감정적으로 힘든데 코로나 팬데믹은 기존의 평범한 환경조차 바꾼다. 예전에 즐겨 다녔던 가게 여럿이 문을 닫았고 최근에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한 단골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Mr. Gus’ Ristorante‘가 장기간 이어지는 팬데믹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문이 닫힌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선뜻 떠나질 못했다. 예상된 일이었다. 2주 전에 그곳에서 저녁을 먹었을 적에 남편과 나, 우리만이 유일한 손님이어서 불안했었다.

즐겨 찾는 식당 중에 사람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들은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끔 낯익은 지인들을 만난다. 실내 이용이 금지 되었을 적에는 열심히 테이크아웃을 해서 먹었고 식당이 문을 열자 열심히 찾아가 이용한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는 남편 덕분에 나는 부엌에서 해방되어서 좋다. 이렇게 우리 부부의 노후생활은 예전에 전혀 예기치 못한 일차원에 머물고 있다.

며칠 전 동네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다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기뻐서 손을 잡았다. 오래전 몽고메리에 이사와서 만나 친하게 사귀었던 그녀가 반갑게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민망했다. 한동안 만나지 않다가 둘 다 노인이 되어서 만나니 웃음이 나왔다. 옆에 있는 남편들의 존재를 잊고 서로의 근황을 빠르게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아른거리던 기억의 자락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분명하지 않았다. 우습지만 다음날 운동하던 중 불쑥 그녀의 이름이 생각났다. 풀어진 기억의 나사를 조아야 한다.

언젠가 한국을 여행하다가 한 꽃집의 벽에 걸린 ’바람직한 노후생활‘ 글이 좋아서 퍼왔다. 작자 미상인 이 글 중에 좋은 조언이 있다. “집안과 밖에서 넘어지지 말고 끼니를 거르지 말고…설치지 말고…잔소리를 하지 말고…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말 것이며…어차피 젊은이들에게 신세질 몸…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 하는 것이 편하고… 돈이란 것은 늙어서 더욱 필요한 것이니, 죽을 때까지 놓지 말고 꼭 쥐고…신문, 잡지, 책을 통해서 꾸준히 두뇌를 세척하고 두 가지의 취미 생활을 하며 건강에 유념하라…” 이렇게 원만하게 살고 싶지만 내가 사는 사회에 간섭하고 싶은 욕심을 어떻게 버리나. 우선 고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깨어나자.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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